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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과 평화(종려주일)

by 성소교회 2022. 5. 15.

예수님이 오시기 160여년 전 유대 땅의 사회 상황

    1)  짧은 독립 기간을 제외하고 500여년간 외세의 지배와 수탈을 당하던 땅, 이스라엘
    2) 헬레니즘 이전에는 주로 경제적인 수탈이었지만,
    3) 헬레니즘 이후로는 종교의 영역까지 박해가 일어나던 상황
    4) 마카비 가문의 항쟁을 통해 잠시간 독립국이 되었으나,
    5) 다시 로마의 속국이 되었고, 에돔인었던 헤롯이 로마의 앞잡이로 이스라엘 땅을 지배 

      종교적인 박해(유대교금지),
      경제적인 수탈(세금)로 인해 민심에 불만이 팽배하던 시기

등장하는 예언자 또는 메시아

1) 드다(행 5:36), 광야에서 사람들을 모아서 요단강으로 몰려옴, 그는 요단강을 가르는 기적을 행한다고 사람들을 선동함, 로마 군대의 공격을 받아 많은 사람이 죽었고, 드다는 포로로 잡혀가 예루살렘에서 참수당함 

2) 한 애굽인(행 21:38), 이 사람은 애굽에서 온 유대인으로 사람들을 모아 감람산으로 몰려옴, 자신의 힘으로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리겠다가 하다가 로마인의 공격의로 많은 사람이 학살당함, 그는 살아서 도망감.

3) 세례 요한, 세례 요한도 요단강에서 활동하면서 성전제사를 통해서만 받는다는 죄사함을 얻는 회개의 세례를 베품, 그도 당시의 갈릴리와 베레아의 왕이었던 헤롯 안티파스의 재혼 부정을 비판했다가 감옥에서 순교 당함

4) 로마 황제, 그도 지중해 주변 지역을 다르시던 평화의 사도이자, 신으로 자신을 추앙하도록 함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 - 종려주일

1) 예수님은 이전의 예언자, 또는 자칭 메시야와는 달리 스스로 기적을 통한 해방을 말씀하시지 않았으나,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한 정치적인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았음(배신자 유다도 그 중의 한명). 만약 예수님도 그러한 발언을 했다면, 당연히 로마군대의 공격을 받았을 것

2) 그러면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과 다른 예언자 또는 자칭 메시아는 무엇이 달랐을까?

3) 예수님 이전 새로운 세상을 연다고 주장한 메시아나 예언자들은 그들이 타도하는 대상과 별다를 것이 없는 방법으로 권력자만 바꾸는 방식이었기에, 얼마후 그도 똑같이 타도의 대상이 된다.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자유와 정치적인 자유를 주겠다고 등장한 하스몬 왕조도 얼마후에는 기존의 권력자와 다를 것이 없는 일들을 하다가, 로마 제국에 의해 정복당함
즉 그들은 폭력을 폭력으로 바꿀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기 때문에 정권교체만 무한 반복하는 상황이 됨(고대 분별된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러하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에서 배우는 것은?

1) 예수님도 여호수아때 갈라졌던 요단강에서 머무셨고, 이스라엘이 통과했던 광야를 지나, 감람산을 넘어서 동쪽에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는 점에서는 유대 민족이 고대하던 메시아와 같은 모습으로 오셨다.

2) 메시아이자 구세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의 기대대로 오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방법으로 오셨는데, 그 이야기가 누가복음 19장에 기록되어 있다.

3) 세상의 메시아나 권력자는 무리들의 힘이나, 기적이나, 군대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먼저 더 강한 힘, 무력으로 다른 이들을 정복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즉 더 강력한 파워로 세상을 바꾸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다 강한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한가지 힘으로 세상으로 바꾸려고 오셨다. 

4) 예수님은 세상의 온간 파워와 법칙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한가지로 만드는 하나님나라를 여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 나귀새끼를 가져오라는 대범한 요구 - 세상의 법칙 초월
- 이 말씀에 그대로 신뢰하고 행동하는 제자들 - 합리적인 세계관 초월
- 아무 조건도 없이 허락하는 나귀 주인들 - 경제와 소유관념 초월
 
이들은 중요한 때에 세상의 법칙보다, 합리적인 세계관보다, 소유욕보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가 는 사람들이다. 이 모든 행동은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삶의 패턴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여시려고 하는 새로운 세상이다.

4) 공중나는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물론 세상의 법칙을 따라 살지만,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때가 되면, 세상의 법칙과 경제관과 소유관조차 초월하는 행동을 보여줄 수 있는데, 그것이 예수님이 여실려고 하는 하나님나라이고, 교회라는 것이다.

5) 세상과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가 회복된 나라, 그것이 예수님이 만드시는 나라이다. 이 나라는 무력이나, 물질이나, 정치적인 계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을 절대 신뢰하고, 두려워하고, 믿는 존재들로 이루어가는 나라이다.

6) 그래서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도 하늘에는 영광이라고 했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을 통해 만드시는 세상은 하나님의 법이,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순종이 만들어 가는 나라이므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된다. 로마 황제나, 메시아나 통치지자 영광이 아니다.


7)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모습은 배려이다. 

- 평화의 상징인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심
- 사람들은 종려가지와 옷을 길에 펼침으로 환영함

8) 예수님은 서쪽에서 말을 타고 입성하는 로마군대나, 현혹된 무리들을 끌고 와서 사회를 혼란시키는 메시아들로 인해 두려워하는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평화의 상징인 나귀를 타고 입성하심으로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키시는 배려를 베풀어 주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뜻한 환영으로 맞이했다. 잠시나마 긴장하던 예루살렘 사람들과 로마 군대와 종교권력자들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9) 예수님이 만드시길 원하시는 세상은 서로를 배려함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무력으로 잠시 사람들을 바뀔수는 있겠지만, 사람들의 존재와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서로를 향한 배려이다. 힘으로 누르지 않고, 무력으로 통제하지 않고, 하나님과 예수님에 우리에게 그리하셨듯이 우리 사람들도 서로를 배려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기본 정신이다. 

10)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세상의 법과 물질보다 큰 것으로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영광라면, 힘으로 누르지 않고, 배척하지 않는 배려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 내는 것이 평화이다. 누가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이야기에서 예수님으로 인해 임한 사람들사이의 평화를 말했고, 똑같은 평화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11) 그러므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는 예수님이 새로 여실 하나님 나라, 이 땅에서의 교회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 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깨 영광돌리는 것과, 함께 구원얻은 존재들끼리 배려로 만들어가는 평회로운 삶이다.